필리핀 정부는 대구 경북 지역에서 출발하는 모든 외국인 및 필리핀 도착 전 14일 이내 동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단, 필리핀인의 배우자 및 자녀, 영주권자, 외교비자 소지자는 제외)
이와 관련, 필리핀 이민청은 2월 28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입국심사과정에서 대구 경북 지역 방문 외국인을 선별하기 위해 입국심사관이 한국의 주민등록등본 및 신분증을 검사하도록 하고, 필리핀으로 운항하는 모든 항공사에 승객의 최근 14일간의 체류 행적을 조사하도록 지시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필리핀 이민청 공항만 직원들에게 시달된 지침에 따르면, 입국심사시 입국신고서에 기재된 해외 주소(Address Abroad) 항목으로 심사하고, 필요시에는 주민등록등본상 기재된 주소를 확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필리핀 방문 예정인 국민께서는 필히 영문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영문 주민등록등본은 정부24 홈페이지(www.gov.kr)에 접속하여 발급받으실 수 있습니다.(영문의 경우 관공소 근무시간에만 신청 및 발급이 가능하며, 발급에 3시간 소요되므로 사전 신청 필요) --> 하지만 29일 아침 10시까지 정부24시센터는 점검중이므로 면세구역내 들어온 외국인 및 한국인은 영문등록증,국문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없었다.
만약, 영문 주민등록등본을 준비하지 못하고 공항에 도착하신 경우에는 공항 무인발급기를 이용하여 국문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아서 번역본을 함께 지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필리핀 대사관은 필리핀 이민청과 동 조치와 관련 지속적으로 협의 중에 있으며, 필리핀을 방문하는 우리 국민이 불편하지 않도록 세부적인 사항을 추가로 협의할 예정입니다.
---------------------------------------------------------->29일자 제 3보 대구 경북 방문자 필리핀 입국금지 안내
<참조 :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오늘 아침 07:45분 마닐라 비행기였던 대한항공 승객분들은 이 사실을 오늘 면세구역에 들어와서 알게되었으며, 모바일 또는 셀프 체크인&셀프 백드랍으로 보안을 통과한 여행객에 대해서는 다른 안내가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면세구역내에서 OA서비스를 통해 정부 24시 사이트에서 국문,영문등록증을 발급 받을 수 있지만 점검기간은 29일 10시까지므로 07:45분발 마닐라행 승객에 대해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보안을 통과하지 않은 승객은 무인민원발급기를 통해 국문등록증이 발급이 가능했다.24시 운영(T2기준)
확진자 급증에 따른 한국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가 상향됨에 따라 항공사들도 타격이 큰듯하다. 에어서울또한 한 노선을 제외하고 다른노선을 전면 비운항에 돌렸고, 체코항공 하와이안항공 포함 한 항공사들 또 대한항공 대구 노선이 3월말까지 비운항에 들어갔다. 이에 따른 직원들의 감봉이나 무급휴가에 따라 항공업계가 코로나 종식까지 침체될 위기다.
인천공항은 8년만에 승객수가 8년전으로 돌아갔다.
T2기준 29일자로 출발승객수가 6천으로 내려갔으며, 보통 하루에 출발승객수가 7만대였던 T1도 코로나 사태에 2만대로 확 줄어들었다.
인천공항 면세점 매출도 반토막 난 상황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로는 면세점에 임대료를 그대로 받을것인지 감면해줄것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만 면세점 입점 초반부터 높은 임대사용료를 둘러쌓고 공방을 펼친 공항공사로써는 감면을 기대하는 힘들다. 만약, 국토부의 지침 또는 지원이 없다면말이다
◆'코로나19' 직격탄 맞은 免, 임대료 인하 요청…인천공항 '묵묵부답'
면세업계는 '코로나19'로 매출이 60% 가량 급감하자 지난 7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임대료 감면을 요청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출국하는 이용객 수가 급감하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해 1월 하루 평균 20만 명이었던 이용객 수는 이달 23일 10만 명 수준으로 절반 가량 줄었다. 그러나 인천공항 면세점이 매출과 업황에 상관없이 고정된 금액을 임대료로 내는 '최소보장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탓에 수익성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상태다.장유미기자sweet@inews24.com
WHO는 2020년 2월 11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공식 명칭을 'COVID-19'로 정했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서 'CO'는 코로나(corona), 'VI'는 바이러스(virus), 'D'는 질환(disease), '19'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이 처음 보고된 2019년을 의미한다. 이에 우리 정부는 2월 12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한글 공식 명칭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국문 약칭 코로나19)로 명명한다고 발표했다.
82년생이면 저와 그리멀지 않은 시대를 타고난 김지영씨의 드라마같은 성장기를 읽고나니, 이 책이 실화는 아니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작품같았습니다.
82년생 보다 10년뒤에 태어난 저는 어머니는 어떻게 성장하셨고, 지금까지 살아오셨을지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김지영씨는 저희들의 부모님과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왔고, 여성의 경력과 결혼에 압박 그리고 육아까지 해내는 모습이 참 애절했습니다. 사실 페미니즘 성향은 모든 여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지 보는내내 화도 났고 암울한 현실에 대하여 또 한번 좌절했습니다. 너무나 현실같은 글에 잊고 살았던 여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 그리고 사회보다 작은 숨막히는회사에서 목을조르는 상사의 악함에 또 한번 치를 떨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페미니즘을 상징하고 있다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저는 누군가는 다시한번 곱씹어 봐야할 문제라고 느껴졌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느누가 이런책을 읽고 동요하겠느냐 하겠지만, 남성보다는 여성분들 특히 직장에 다니면서 육아를 함께 병행하는 주부에서는 눈물을 삼키며 봤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책의 어느부분에서 더 많이 공감하고 생각이 많아질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김지영씨는 누구의 엄마라기보다 여자로써 존중받지 못해서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도 가끔 여성이라는 이유로 패널티를 주거나, 무시하거나, 성적으로 하대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불같이 성을 내곤하는데 이로써 우리는 더 많이 알아야하고 느껴야하고 생각해야합니다.
-검투사경기: 주로 노예나 전쟁포로중에서 운동실력이 출중하고 용맹하게 잘 싸우는 이들로 구성되었다.
대결이 끝나면 승자는 패배한 검투사를 죽여야 할지, 혹은 용맹함을 보여 주었으니 살려야 할지에 대한 관중들의 결정–혹은, 황제가 그 자리에 있다면 황제의 결정–을 살폈다. 오늘날 매우 유명한, 엄지손가락을 올리거나 내리는 제스처를 통해 이러한 결정이 내려졌다.
플라비우스 왕조때 세워짐 비공식이름 콜로세움
맹수연기,그리스도교시대에는 신도들 학살장소로 쓰이고
내부는 약 5만명을 수용한다
<판데온 (뜻: 모든신들의 신전)>
습지 지반에 세워졌지만 2천년이 흐른뒤에도 여전히 온전한 모습을갖춤
돔 꼭대기에 있는 커다란눈(오쿨루스)를 통해 자연광이 들어온다
무덤으로 사용/두명의 이탈리아 왕과 라파엘로를 비롯한 르네상스 화가와 건축가들이 잠들어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로마 황제들이 축하행렬 길에 만들어진 문.
이는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 황제라 알려지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바로 외부에서 벌어진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312)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 아티카 양식으로 된 꼭대기 부분은, 황제가 막센티우스와 벌인 전투와 그 승리를 표시하는 여러 장면, 인물, 글귀가 조각되어 있는 대리석 패널에 둘러싸여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은 재치 있는 재활용을 보여 주는 매우 오래된 본보기라 할 수 있는데,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에 세워졌던 옛 기념물로부터 장식 부분을 떼어오거나 개조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재료가 재사용되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트레비분수>=폰타나 디 드레비
분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로마에서 22km떨어진 살로네샘으로부터온다,
분수의 중앙 니치에는 바다의 신인 넵투누스의 조각상이 서 있다. 그는 해마가 끄는 조개 마차를 몰고 있다. 그 양쪽의 니치에는 '풍요로움'과 '유익함'의 여신 조각상이 서 있다. 조각상 위에는 로마의 수도교 역사를 나타낸 얕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일은 민간 전설에 기초한 유명한 관습이다. 어깨 너머로 동전 하나를 던져 넣으면 로마를 다시 한번 방문할 수 있다고 하며, 두 번째 동전을 던져 넣으면 소원을 빌 수 있다.
<포로 로마노> foro=공화장이라는뜻
. 포로 로마노가 세워진 지역은 처음에는 비가 오면 물이 괴는 습지였는데, 하수시설을 확충한 후 도시 생활의 구심점을 이루는 장소가 되었다. 1000년동안 로마 심장역할을 한다.
<베네치아 광장>
로마의 중심부에 위치해 '로마의 배꼽'이라 불리는 광장이다. 광장 북쪽으로는 코르소 거리가 뻗어 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캄파톨리오 광장, 로마 제국의 영광이 남아 있는 유적지 포로 로마노로 이어진다. 이 광장은 1871년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광장 중앙에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념상이 서 있다. 광장에서 웅장한 전면이 바라보이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념관(Vittorio Emanuele II Monument)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백색 대리석 건물로, 현재 통일기념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건물의 옥상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로마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베네치아 광장이라는 이름은 16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로마 대사관 역할을 하던 베네치아 궁전에서 따온 것이다
베네치아 광장 한쪽에는 2세기 초의 유적인 트라야누스 원주(Colonna Traiana)가 서 있다. 원기둥 하단에는 화장한 황제의 유해를 안치했다고 하며 원래 트라야누스 황제의 상이 있었다고 하는 원기둥의 정상에는 베드로의 상이 서 있다. 원기둥 표면에는 다키아 원정의 전투 장면을 사실적으로 조각한 나선형의 부조가 남아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스페인광장> 피아차 디 스파냐[ Piazza di Spagna ]
스페인 광장은 로마 시내에서 가장 활기차고 화려한 지역으로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7세기에 이곳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던 데에서 광장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특히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배경으로 나온 스페인 계단 주변이 유명하다. 1722년에 건립된 137개의 우아한 스페인 계단을 올라가면 언덕 위에 삼위일체 성당(Trinita dei Monti)이 있고 그 앞에는 성모마리아를 기념하는 원기둥이 세워져 있다. 광장은 수세기 동안 로마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식처이자 여행객들에게도 약속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봄철에는 광장의 계단을 커다란 진달래꽃 화분으로 장식해 로마 최대의 꽃 잔치가 열린다.
<스페인 계단>
계단 바닥에는 보트 모양의 '폰타나 델라 바르카치아'(오래된 보트의 분수)가 있는데, 이는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잔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인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디자인한 작품이라 믿어진다. 이 분수는 1588년 테베레 강에 홍수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실어 나르는 데에 사용되던 작고 바닥이 평평한 보트가 물이 빠진 뒤 그 자리에서 발견되었던 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나보나광장>[ Piazza Navona ]
로마의 바로크양식 자랑거리 중 하나.
원래 이곳은 8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전차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도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타원형 트랙의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나보나 광장의 명물은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3개의 분수다. 피우미 분수(Fontana dei Fiumi), 넵튠 분수(Fontana di Nettuno), 모로 분수(Fontana dei Moro)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는 중심부에 자리한 '피우미 분수(4대 강의 분수)'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조각가인 베르니니의 걸작으로 1651년에 만들어졌다.
이 분수는 17m의 오벨리스크 하단에 4개의 파라다이스 강인 유럽 대륙의 다뉴브 강, 아시아 대륙의 갠지스 강, 아프리카 대륙의 나일 강, 남아메리카 대륙의 플라타나 강을 상징하는 각각의 신의 모습이 석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광장 남쪽 끝에 있는 모로 분수는 1576년 교황 그레고리 13세의 명을 받아 포르타가 설계한 작품으로 용과 돌고래를 형상화했다. 분수의 이름과는 달리 중앙에 있는 인물은 실제로 다른 바다의 신이다. 잘못된 이름은 아마 베르니니가 설계한 것 중 돌고래를 첨가한 안토니오 모리(Antonio Mori) 조각가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광장 북쪽에 있는 넵튠 분수는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바다뱀을 꽉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분수 앞에 종탑 2개가 높이 솟아 있는 건물은 성 아네제 인 아고네 성당(Sant' Agnese in Agone)으로 베르니니의 라이벌이었던 보로미니의 작품이다.
304년에 13세의 어린 소녀 성 아네제는 기독교를 포기하고 이교도인과 결혼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이를 거절했다. 그녀는 옷이 모두 벗겨진 채 경기장 밖으로 내던져졌는데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이 길어지면서 알몸을 가려 주고 순교했다고 한다. 이런 기적이 일어난 자리에 아고네 성당이 세워졌다. 성당의 종탑 아래에 있는 성 아네제 대리석상은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캄피돌리오>팔라초 데이 콘세르바토리 델 캄피돌리오/[ Palazzo dei Conservatori del Campidoglio ]
고대 로마의 발상지로 전해지는 7개 언덕의 하나인 카피톨리노언덕 한 모퉁이에 미켈란젤로의 구상으로 1547년에 건설되었다좌우 건물이 마주보는 간격은 투시효과의 조화를 위하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향할수록 넓어지게 배치되어 있다. 광장 중앙에는 로마의 현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騎馬像)이 있다. 광장과 건물의 디자인은 그 수법의 독창성과 공간통일의 탁월성으로 해서 미켈란젤로의 가장 뛰어난 건축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피나코테카>
시스티나 성당과 더불어 바티칸 미술관의 최고봉으로 인정받고 있는 피나코테카는 1932년에 개설되었다. 모두 18개나 되는 방에는 12세기에서부터 19세기에 이르는 회화 작품들로 가득하다.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매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완성 작품인 <성 히에로니무스>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바티칸시국>
기원후 64년 로마제국의 황제 네로(Nero)는 자신의 실정(失政)에 쏠리는 관심을 돌리기 위해 로마 시내에 불을 지른 뒤 그 범인으로 크리스트교인들을 지목해 십자가형이나 화형을 시키는 엄청난 박해를 가합니다. 이때의 박해로 순교한 대표적인 이가 바로 성 베드로죠.
이후 250여 년이 흘러 나뉘어 있던 로마제국의 권력을 하나로 통합하려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는 꿈속에서 십자가가 보이는 계시를 받은 뒤 밀비오 다리(Milvian Bridge) 전투에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이에 황제가 된 뒤 로마제국 최초로 크리스트교를 인정하는 칙령을 밀라노(313년)에서 발표하고, 베드로(Peter)가 묻혀 있다고 알려진 묘지 위에 성 베드로 성당(Saint Peter's Basilica)을 세우도록 명합니다. 그리고 450여 년이 흘러 로마제국이 쇠퇴하며 세력이 약해진 교황 스테파노 2세(Stephen II)는 힘은 막강하지만 명분이 부족하던 프랑크왕국(현재의 프랑스)의 왕에게 황제로서의 세례를 해주고, 756년 이에 대한 보답으로 피핀(Pepin) 왕에게서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 중부의 넓은 영역을 할애받습니다. 이후로 1,000년 넘게 이 지역은 교황이 다스리는 땅이 되죠.
하지만 19세기 들어서 이탈리아를 통일한 이탈리아왕국의 입장에서 보면 교황 세력의 마지막 보루인 바티칸이 달가울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870년 몰수 선언을 하는데요, 전 세계 용어 통일: 크리스트교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상징적인 존재를 무력으로 어찌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60여 년이 흐른 1929년,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정권을 공고히 하고자 교황에게 공식 사과를 하고 바티칸을 돌려주는 대신 이탈리아의 정치나 전쟁에 관련해 그 어떤 간섭도 하지 말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이를 ‘라테란 협정’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협정을 통해 바티칸이 현재처럼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인 바티칸시국은 여권이나 비자 없이도 방문이 가능한데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20년(1506~1626년)에 걸쳐 새로 지어진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입니다. 참고로 성 베드로 성당은 한번에 6만 명이 예배를 볼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입니다. 그 옆의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은 라파엘로나 보티첼리의 아름다운 벽화와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로 유명한데요,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는 르네상스 시대의 정점을 찍은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미켈란젤로는 본래 피렌체에서 조각가로 활동하다가 교황 율리오 2세(Julius II)의 부름을 받고 바티칸으로 와서 본격적인 그림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천지 창조〉를 보면 그의 첫 대규모 그림 작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생산 활동도 하지 않는 바티칸시국은 어떻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을까요? 일단 해마다 바티칸을 찾는 500만 명의 관광객에게서 거둬들이는 관광 수입과, 전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가 내는 기부금으로 3,000억 원가량 되는 1년 예산의 집행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또 바티칸의 총자산도 65조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거주자와 국민을 다 합쳐도 1,000명이 안 되니 지출은 적고 자산은 계속 늘어나는 구조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죠. 참고로 바티칸시국은 절대왕정 체재인데요, 현재 세계에서 절대왕정 체재를 갖춘 나라는 바티칸시국을 포함해 아라비아반도의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와 아시아의 브루나이, 아프리카의 스와질란드, 이렇게 총 7개국입니다. 그러면 바티칸시국의 왕은 누구일까요? 교황이 곧 왕의 역할을 함께 합니다. 하지만 교황은 전 세계 212명 추기경들이 투표를 통해 뽑는, 세습되지 않는 왕이라 다른 절대왕정과는 확연히 구분되죠.